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승주 낙안읍성 (樂安邑城)

메탈 2008. 2. 21. 08:04

종    목 : 사적  제302호 
명    칭 : 낙안읍성(樂安邑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223,108㎡ 
지 정 일 : 1983.06.14 
소 재 지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공유,사유
관 리 자 : 순천시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낙안면(樂安面) 남내리(南內里)·동내리(東內里)·서내리(西內里)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석축읍성. 둘레 1385m.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으로, 원래는 토축이며 1397년(태조 6)에 만들어졌다. 1450년경 석축으로 개축했는데, 이 때는 옹성(甕城)이 없고 문이 3곳이었으며 여장(女墻)이 420개였다고 한다. 그 뒤 옹성이 설치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남·서 문터에만 흔적이 남아 있고, 여장은 모두 붕괴되었다. 성은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있고, 동서 방향으로 기다란 직사각형에 가깝다. 성벽은 아래쪽에서부터 커다란 할석(轄石)을 이용하여 쌓아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박음하였다. 이 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완전히 보존된 것 중 하나이다. 사적 제302호.

 

차를주차시키니 그곳이 동문이다.

돌로쌓은 홍예문위에,초루를 세웠으며 낙풍루(樂豊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여장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밖을볼수있는 현안(懸眼)과, 활을쏠수있는 총안(銃眼)또한 사방 1척크기로 뚫려있다.

성문앞에 옹성이 있는데, 보통 둥근모양의 보편적인것과는 대조적으로 ㄷ 자형이다.

 

문을 들어서면 큰 길이 서문으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로는 관헌이, 왼쪽으로는 민가가 속해있다.

 

오래된 장승이 손님을 맞이한다.

 

객사(客舍)

왕명으로 고을을찾은 관리나, 귀빈을 영접하고 머물게하는곳.

 

 

객사 앞이다. 뒤에 그네도 보인다.

 

관헌. 길건너 민가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낙민루

안내문에 의하면 낙민루는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호남의 대표적인 명루로서 유명하였다고 하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986년에 기존의 초석 위에 겹처마 팔각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기존의 초석 위에 지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크기로 지어진 것같으나 지금은 낙안읍성 안에 훼한 마당에 그것도 동헌 앞에 지어져 찾는 이도 별로 없는 쓸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남쪽의 걸쭉한 장승이다. 

 

전시관에 들어가니 전체모형이있어 알기쉽게되어있다. 

                                                   오른쪽밑의 동문에서 관헌을 보며 서문으로 가는중이다.

 

길건너에는 민가와 가게들이 있고...

 

 

 

서문이다.

홍예문이나 누각은 없었다.

 

서문위로 올라서니, 성벽길이다.

이길을따라 읍성을 한바퀴 돌수도있다. 

 

서문 밖의모습

 

낙안팔경이라는것도 여기서 알았다.

 

 

민가들이 평화스럽다.

한국의 정체성을 느낄수있는곳이 이이상 어디에 있겠나?

 

한적하고 호젓함..그리고 안락함. 

 

 

 

 

 

 

남문이다.

쌍청루(雙淸樓)라 불리며, ㄷ 자형의 옹성이 앞에있다.

여장에는 얼굴을 내밀어볼수있는 현안(懸眼)과 활을쏠수있는 총안(銃眼)이 마련되어있다.

 

남문위로 올라가니 성벽길과 누각이 잘보인다.  

 

 

 

 

어두워지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동문으로 돌아왔다.

 

 

 

동문을 나서니 조명받는 문이 아까완 분위기가 다르다.

 

두시간이면 충분히 보고 느낄수있는 읍성.
이런 전통적인곳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낙안을 떠난다.
 
벌교에서 꼬막정식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격인 벌교. 너무 개발되어 소설의 분위기를 느낄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