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전시장

1784 유만주의 한양

메탈 2016. 12. 31. 12:26

서울역사박물관은 25일부터 2017년 2월26일까지 '1784 유만주의 한양' 전시를 개최한다.

조선 후기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평생을 보낸 유만주(1755~1788)는 사망하기 1년 전까지 13년간 하루도 빼놓지않고 쓴 일기 '흠영'(欽英)을 남겼다. 설날 차례, 과거시험 등 18세기 후반 한양의 풍경과 일상생활이 풍부한 역사자료다.

흠영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으로 유만주의 자호이기도 하다.

1784년은 세계사는 물론 조선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었던 한해다. 정조 8년을 맞아 정치는 안정되고 가을에는 풍년이 들었다. 평범함 속에 담긴 개인의 일상을 주목하는 기획전시회다.

유만주의 '흠영' 뿐 아니라 아버지 유한준의 초상화, 즐겨찾던 '석양루'의 그림인 '인평대군방전도', 낙방한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 '세자책봉경용호방목', 수호전 등 즐겨보던 중국소설, 처방받은 약재 등이 소개된다.


당시 집을 사던 풍경도 담겨 있어 과거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갓 서른 살이 된 유만주는 해주의 판관이 된 아버지 덕분에 생활이 좋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이사를 하는 기회도 찾아왔다. 원래 살던 창동 집은 초가집이었다. 아버지는 집 근처에서 적당한 것을 얻으라고 했다. 하지만 유만주는 아름다운 정원이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유만주는 1월부터 집주릅(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권하는 창동과 그근처 낙동(駱洞), 수서(水西) 등의 집들을 여러 군데 살펴봤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계약도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8개월 만에 100칸짜리 명동(明洞) 집을 구했다. 가격은 2000냥. 돈의 일부는 친척에게 빌리고 대부분은 강경상인의 사채를 이용했다.

그가 집을 산 2000냥은 얼마나 되는 돈일까. 한양 최고가 주택의 1/10의 금액이요, 125개월의 생활비였다. 쌀로는 3000말이었다. 이는 8식구가 25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유만주가 비싼 집을 사자, 아버지는 “분수에 맞지 않다”며 취소하라고 계속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유만주는 새집이 좋았다.

유만주가 집을 구할 때 도움을 받던 집주릅. 그는 집 소개, 거래 알선, 도면 작성, 가격흥정, 매매문서 작성 등에 관여했고, 수수료를 받고 일했다. 보통 거래를 주선할 때 1냥을 받았다. 돈 대신 먹·담배·은어 등 현물을 받기도 했다. 


집주릅은 거래 과정에서 농간을 부리며 주도권을 쥐었다.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집값을 올리기도 했다. 이사 날짜가 잡힌 거래를취소하기도 했다. 또한 집 거래가 되지 않는 것이 유만주의 우유부단함 때문이라고 자극하기도 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경희궁 근처의 집 대신 예산을 한참 넘어선 명동의 집을 서둘러 구입하도록 유도한 것도 집주릅이었다. 유만주는 자신의 뜻을 따라 주지 않고 경제적 이득만 노리는 집주릅에 대해 강한 불만과 혐오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거래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직접 화를 내지도 못했다.

유만주는 “하나하나 일을 이해하지 못하니 결국에는 이런 낭패와 황당한 일이 있게 된다”고 했다. - 신문기사




팜플렛



전시동선

1784년 일년 12달을 전시하였다.





조선시대 정조때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



월별 전시내용이다.


























모니터로 흠영일기를 볼수있다.



일대기로 전시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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