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추사고택 (秋史古宅)

메탈 2015. 9. 4. 10:11

종 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 

명 칭 : 김정희선생유적 (金正喜先生遺蹟)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역사사건/ 역사사건 

수량/면적 : 18,308㎡

지정(등록)일 : 1980.10.23

소 재 지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외 13필 

시 대 : 조선시대

관리자(관리단체) : 예산군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예산군 문화관광과 041-339-7323


조선 후기 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유적으로 추사고택과 이 일대를 말한다.

이곳에는 추사의 옛집을 비롯하여 화순옹주와 남편인 김한신의 합장무덤이 있고, 그 옆으로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린 열녀정문,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김정희의 무덤이 있다.


김정희은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로서 중국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고증학과 금석학·서체 등을 배웠으며,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여 밝혀 내었다. 헌종 6년(1840)에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연구해 온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아버지 무덤이 있는 과천에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 문화재청




추사 고택 앞 너른 마당에 다다르면 솟을 대문이 올려다 보인다. 그 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약간 물러서 있고 그 너머로 안채의 일곽이 조금 보인다.


그 안 너른 터에 사랑채와 안채가 전후로 놓여 있는데 대문과 사랑채는 가깝지만 건물 좌측이 너른 마당으로 비워져 있어 평온한 기운이 감돌며 우측 후면에는 원래의 야트막한 자연 지형 그대로 돼 있다. 그리고 후면으로 돌아가면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이 놓여 있다. 사당에서 우측 담장을 따라 오가는 경사 길에서는 담 밖의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다.

 

사랑채는 ㄱ자 평면으로 1칸 대청을 사이에 두고 큰 사랑 부분과 작은 사랑 부분이 직교하고 있는데 대청이 작고 방을 크게 두어 대청보다 방의 기능이 중시돼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그리고 좁은 대청의 개방감을 얻기 위해 대청 쪽으로 난 문들을 모두 활짝 열수 있게 들어열개로 해 놓았는데 문짝을 내렸을 때의 보온과 폐쇄성을 위해서 문에 두꺼운 맹장지를 발랐고 중간에는 빛이 통하도록 불발기창을 냈다. 또한 사랑채 전면은 툇마루가 바깥 켜를 이루며 빙 둘러쳐 있는데 바닥 높이가 높아 루에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며 그에 따라 건물도 높아져서 당당하고 권위적인 느낌이 든다. 사랑채 기둥에는 추사 글씨의 주련 편액 등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추사가 ‘석년(石年)’이라고 글씨를 새겨 세운 돌이 있는데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해시계이다.- 나무신문에서


솟을대문


안채와 사랑채


사랑채


안채


사랑채 정면


안채 정면


영당



사랑채와 솟을대문




















안채는 ㅁ자형이라 문이 두개다




영당가는 길







안채뒤에서 들어오는문과 앞마당에서 들어오는문 두개다.


안채 뒤뜰


사랑채



우물이다.


능소화가 피어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