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139호 (고성군)
명 칭 : 고성소을비포성지(固城所乙非浦城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높이 3.2m 폭 5.0m
지 정 일 : 1994.07.04
소 재 지 : 경남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 398-14외15필지
소 유 자 : 고성군외
관 리 자 : 고성군
상 세 문 의 : 경상남도 고성군 문화관광과 055-670-2221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소을비포에 적을 막기 위해 임시로 쌓은 성보로 언제 처음 쌓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세종실록』에 소을비포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미 성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낮은 야산에 해안 경사를 따라 둥근 형태로 성을 쌓았는데,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3.2m, 길이는 5m 정도로, 성벽을 쌓은 돌의 일부는 인근의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운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커다란 바위돌을 이용하여 담장 형태로 쌓았으며, 큰 돌을 쌓을 때 생기는 공간은 작은 돌로 채워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였다.
남쪽으로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섬이 막고 있어 전망은 넓지 못하나, 태풍의 피해가 전혀 없어 현재까지도 각종 어선의 대피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 문화재청
이곳은 본래 조선 전기에 왜구(倭寇)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하여 설치된 소을비포 군진(所乙非浦軍鎭)이 있던 곳이다. 그러므로 아마 조선 전기에 일단 성을 쌓았다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다시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 성과 가까운 자란도(紫蘭島)와 가룡포(駕龍浦)에 임시로 고성현 관아(固城縣 官衙)를 옮기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었던 것 같다.
이 성은 바닷가에 돌출(突出)한 낮은 야산에, 해안의 경사를 따라 타원형으로 쌓은 산성(山城)이다. 성벽(城壁)은 커다란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앞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 자연적인 방어시설[垓字] 역할을 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성의 규모는 둘레 200m, 높이 3m이고, 북쪽에 성문(城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인근의 좌이산(左耳山)과 사량진(蛇梁鎭) 주봉(主峰)의 봉수대(烽燧臺)와 연결되어 있어서, 비상시에 바다에서 적을 막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성군 홈페이지
7년전에 답사했을때는 서쪽이 미완공 상태였다.
옹성이 완공되었다기에 들려보았다.
북문모습
이상한점은 망루가 새로 제작된점이다. 작은예산이 아닐텐데 왜 다시했을까?
깨끗이 새로제작된 북문 누각.
서문으로...또하나의 의문점은 성곽을 왜 이리 낮게 복원했을까? 이다.
한눈에 보이는 진성.
서문 옹성이다.
2m도 안되는 낮은높이의 옹성.
내려가 보았다.
대형 바윗돌을 이용하여 담장식으로 쌓았으며 사이사이를 작은 돌로 채워 성돌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였다.
성벽의 석재 일부는 인근의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조선 전기의 성 축조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주변은 바다로 둘러싸여 천연 해자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좌이산과 사량진 봉수대가 가까이 있다. 성지 남쪽에 사량섬이 위치하여 전망은 넓지 못하지만 태풍 등의 내습이
전혀 없어 현재까지 각종 어선의 대피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보호구역은 7,878㎡이고 고성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두산백과)
아담한 서문옹벽이다. 성곽이 너무낮아 놀이터같다.
소을비포진성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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