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루(江漢樓)
소재지 : 여주읍 하리 200-1
시 대 : 조선
지정사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호
1785년(정조 9) 영·녕릉을 참배하러 여주에 행차한 정조가, 숙종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제향하기 위해, 수행한 김양행(金亮行, ?~1779)에게 대로사(大老祠)를 짓게 하고 곧 바로 사액을 내렸다. 대로사라는 명칭은 정조가 친히 지은 것으로 “덕망이 높은 노인”이란 뜻이며 『맹자』에 그 용례가 보인다. 또 실록에는 정조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대로(大老)란 두 글자는 다만 예부터 천하대로(天下大老)란 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선정(先正 : 송시열)의 문집 가운데에 뛰어난 구절을 모아 편집하면서 그 책의 제명(題名)을 『대로일고(大老逸稿)』라 하였으니, 대체로 이에서 따온 것이다.”라는 기사가 있어 대로사라는 명칭이 붙게 된 연유를 알 수 있다. 송시열은 살아생전 여주에 머물 때마다 대로사 자리에서 효종의 능인 녕릉을 바라보고 비통해 하였으며, 후진들에게는 북벌의 대의를 주장했다고 한다.
대로서원 강당은 팔작지붕에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건물이다. 처마 밑에는 정조대 명필중의 한사람인 도천(道川) 황운조(黃運祚, 1730~ ?) 가 휘호한 “대로서원(大老書院)” 현판이 걸려있다. 또 내부에는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 1732~ ?)의 전서로 된 “첨백당(瞻柏堂)”과 황운조가 행서로 활달하게 쓴 “강한루(江漢樓)” 편액이 있다.
강한루 모습
사방에서 출입할수있게 돌이 놓여있다
뒤쪽엔 대노서원의 현판
일부 온돌을 사용하는 방이 따로있고...
앞쪽으로 여강을 바라보고있으나, 지금은 담장에 가려있는상태다
강한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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