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풍당 (澤風堂)
문 의 처 : 031-770-2897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소 유 주 :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6호
시대구분 : 조선시대
택풍당은 광해군 11년(1619)에 이식이 제자와 자손들을 교육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이식(李植, 1584~1647)은 조선시대의 한문사대가로 손꼽히는 문장가로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堂),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광해군 2년(1610)에 문과에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 및 선전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광해군 10년(1618)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곳 양동면 쌍학리로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연유하였다. 이식이 지은 『택풍당지(澤風堂志)』를 보면, 그가 이곳에 태풍당을 짓게 된 동기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만력 병진년(광해군 8, 1616) 1월에 나는 여주의 북쪽편 촌사에 있을 때, 큰 변고를 만나 여주의 인사들이 화를 입고 나 또한 장차 화를 입을까 두려웠는데 ……중략…… 지평 백아골 선영의 아래를 점쳐보니 대과의 함이 나왔다. ……중략…… 처음 지평의 땅은 척박하고 여주와 접경이어서 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왕 괘를 얻어 드디어 살기 시작했다. 기미년(1619)에 와서 작은 당을 이루고 편액을 다니 당의 생김이 마치 누각과 같다. 높이가 16척이요 중간에 방 한 칸을 달아 기둥과 흙을 쌓았다. 반은 온돌과 창을 내고 벽 밖에는 기둥 4개를 두르고 배판으로 헌을 만들어 높게 보이도록 하고 넓이의 반을 금배로 하였다. 차폐물을 없도록 하여 사방을 조망하기 좋도록 했으며, 헌의 아래 동쪽 치우친 곳이 낮고 습해 샘물을 끌어들여 방지를 만들었다. 못 가운데 약간의 흙을 돋워 버드나무를 심고 당의 안은 실을 당의 밖은 허하게 하여 못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는 모두 택풍의 모습이었다. ……중략……동쪽과 남쪽에 언덕이 있는데, 선영이 있어 당안에서 아침, 저녁으로 추모하며 비록 술과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어도 감히 즐기지 아니한다. 여기에 약간의 책을 두고 근방의 학동 몇 명을 모아 장구를 암송케 하고 싫증이 나면 골짜기 시냇가로 나가 헤엄치며 놀다 돌아온다. 점을 보아 머물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그간 비록 혹 벼슬에 나가기도 했으나 언제든 왕래하며 머물기도 하는데 ……하략……
그는 이곳을 중심으로 자손과 제자들을 강학하였으며, 이후 조선말기까지 택풍당을 거쳐간 그의 후손 들 중에는 정승 3명, 판서급 10명, 문과급제 22명, 무과급제 17명, 생원ㆍ진사가 69명이나 배출될 정도(지평향교지)로 덕수이씨 가문의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던 곳이다.
쌍학리로 은거한 이후 이식은 수차례에 걸친 왕의 출사(出仕) 명을 계속 거부하여 광해군 13년(1621) 왕명을 어겼다 하여 구속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이조좌랑ㆍ예조참의ㆍ동부승지ㆍ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 대사간ㆍ대사성ㆍ좌부승지 등을 지냈으며, 인조 10년(1632)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나 역임하였으나 사친(私親)의 추숭(追崇)이 예가 아님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서 간성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인조 11년(1633)에 부제학을 거쳐 대제학과 예조참판ㆍ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인조 20년(1642) 척화를 주장하다가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가 탈출하여 돌아와 대제학ㆍ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택당집(澤堂集)』이 있다.
택풍당 입구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택풍당
의외로 작고 아담하여 놀랐다
독특한 정자형식의 건물이다
정문안으로 들어가본다
앞에서 본 택풍당이다
전형적인 남향
남쪽의 문와 동쪽의 작은 문
나무조각을 맞춘 건물
아래층은 온돌이 안보이는데 창고였을까?
저 안에서 공부를하였다는데 혼자공부하기에는 딱 맞는것 같다
동쪽에는 작은문이 서쪽에는 큰문이있었다
아마 창문의 역할이었을것같다
택풍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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