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정 (鳳凰亭)
문 의 처 : 031-770-2474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소 유 주 :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24호
시대구분 : 조선시대
봉황정은 용문면 소재지에서 44번 도로를 따라 횡성군 방향으로 3.5㎞ 지난 오른쪽 길가에 위치한다. 서쪽의 산자락이 동으로 길게 뻗어 흑천(黑川)과 마주친 절벽 위에 정자가 건립되어 있는데, 그 일대는 봉황이 춤추는 형상으로 경치가 빼어나 시인묵객들이 즐길만하다.
이러한 지형적인 모습은 봉황정의 다른 이름인 구성대(九成臺) 혹은 남휘정(覽輝亭)에도 반영되는데 여기에서 「九成」은 태평성대가 아홉번 이루니 봉황이 와서 춤추는 형상을 말함이고 「覽輝」는 봉황이 천리길을 날아가다 덕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내려 앉았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봉황정이 처음 건립된 것은 인조 2년(1624) 남원양씨 용문면 입향조인 양응청(梁應淸)과 그의 사촌인 양응함(梁應涵)에 의해서였다. 그 뒤 66년 후인 정조 14년(1791)에 후손들이 중건하였으나, 철종 1년(1850)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다시 1967년에 남원양씨 종중에서 옛 규모대로 복원하였다.
봉황정은 부근에 남원양씨 집안의 활터인 택승정과 짝하여 건립이래 남원 양씨 집안과 이 고장 선비들이 학문을 교유하는 곳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여기에서 양헌수(梁憲洙, 1816~1888)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양성되었다. 또한 당대의 명인들이 시와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지평에 은거하였던 이식(李植, 1584~1647), 명시인 유희경(劉希慶, 1545~1636), 대학자 김창흡(金昌翕, 1653~1722), 한말의 재상 이중하(李重夏, 1846~1917) 등이 봉황정에 올라 그들의 회포를 글로 남겼다. 이중 「봉황정」이라는 제목으로 이항복, 유희경, 김창흡의 작품이 있고 『봉황청풍(鳳凰淸風)』이라는 제목의 양창석(梁昌錫)의 시와 『봉황대지평(鳳凰臺砥平)』이라는 임숙영(任叔英)의 시가 전한다.
봉황정은 팔작 지붕에 겹처마 건물로서 내부에는 누마루를 놓았다. 규모는 정ㆍ측면 각각 3칸으로 정방형이다. 정자 안에는 「봉황대남휘정중수기」(鳳凰臺覽輝亭重修記, 安檍, 1791년, 가로 100㎝, 세로 47㎝)부터 최근에 만든 시문현판까지 모두 7개의 현판이 남아있다. - 인터넷에서
강 반대편에서 본모습인데 숲에가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옆에서 본 모습. 가지치기좀 하여 멋진 정자의모습을 보여줘야하지 않을까?
봉황정 정문이다
늠름한 누각의 형태
앞에는 구성대란 현판이다
정자앞에는 약간의 여유공간이있고 바로 수직 절벽이다
바로 낭떠러지
60년대 복원이라서인지 주춧돌이 재미없다
안에는 남휘정이란 현판
그외 많은 편액이 걸려있었다
역시 정면이 제일 멋지다
밖에서도 보이면 좋으련만...
봉황정을 내려오며 답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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