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53호 ()
명 칭 : 중명전(重明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근대정치국방/ 정치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83.11.11
해 제 일 : 2007.02.07
소 재 지 : 서울 . 중구 정동 1-11
시 대 : 대한제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 문화재청
사적 제124호 덕수궁으로 추가지정. 중명전은 서울지역의 최초창기 근대건축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중요한 건축물 이므로 덕수궁에 포함시켜 국가사적으로 보존관리가 타당함. (고시 2007.02.07)
중명전 (重明殿)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 말기의 2층 건물. 1900년(고종 36)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서, 경운궁(慶運宮;德壽宮)에 딸린 접견소 겸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조인되었으며, 이듬해 황태자[純宗(순종)]와 윤비(尹妃)의 가례(嘉禮)를 치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축소되면서 독립적인 건물이 되었으며, 1915년부터 1960년대까지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경성구락부(京城俱樂部;Seoul Union)의 사교장소로 쓰였다. 1925년 화재로 인하여 벽면만 남고 모두 타버렸으나 곧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3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덕수궁 중명전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이다.
약 2년동안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궁금하여 얼른 가 보았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구한말 역사 현장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이 원형 복원돼 일반에 개방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중명전 내부를 역사현장체험공간인 상설전시관과 교육공간으로 조성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오는 29일 일반에 개방한다고 26일 밝혔다.
중명전은 본래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됐지만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화재가 난 이후 고종황제가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사용하면서 긴박했던 역사의 중심이 됐다.
이후에는 일제의 훼손으로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976년에는 민간에 매각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2006년 정동극장으로부터 중명전 소유권을 인수받아 이듬해 12월부터 원형복원을 시작, 상설전시관을 조성해 근대 역사교육 및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1층 전시는 중명전의 연혁을 정리한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의 현장을 보여주는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을사늑약 후 고종과 대한제국의 노력을 담은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조명한 '헤이그 특사의 도전과 좌절' 등으로 구성됐으며, 2층에는 고종의 집무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살핀 '고종과 중명전' 전시가 마련됐다.
중명전 관람은 수용인원과 문화재 보호 등을 고려해 1일 6회 실시하며,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회당 25명씩으로 관람인원이 제한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복원된 중명전
옆쪽
입구쪽 베란다
옆쪽베란다
내부는 전시장으로 운용중이다
첫번째 방
중명전의 모형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중명전은 1904년 경운궁(현재의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이 됐던 장소다.
이후 일제의 강압적 훼손에 의해 한때 외국인클럽으로도 사용됐고, 1976년 민간에 매각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2006년 정동극장으로부터 중명전의 소유권을 인수받아 2007년 12월부터 원형복원을 시작, 이를 근대 역사 교육·체험의 장으로 조성(상설전시 공간)해 일반 개방을 하게 된 것이다.
전시내용은 4실로 구성된 1층에 중명전의 연혁을 중심으로 한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의 급박한 현장을 보여주는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을사늑약 후 고종과 대한제국의 노력을 담은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조명한 '헤이그 특사의 도전과 좌절', 2층은 중명전의 주인인 고종의 황제집무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살핀 '고종과 중명전' 등으로 구성, 관련 유물을 복제하고 각종 사진 자료 등을 패널 등에 담아 전시하게 된다
영친왕과 이완용 (영친왕 왼쪽)
다음방은 을시늑약이 체결된 방.
서랍을 열면 보충설명이되는 독특한 전시기법이다
을사늑약 서류
을사늑약 과정
다음 방이다
고조이 각국에 보낸 을사늑약의 부당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국력이 없으니,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다
2층이다
고종의 집무실
저 태극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극기란다
유학자 최익현의 정책의견서
그러나 최익현도 일본에의하여 쓰시마로 유배를 가고만다
2층 베란다
1층으로 내려오며 밖으로 나간다
비극을 가진 중명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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