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문경 조령산성(鳥嶺山城) 2 - 중성(中城)

메탈 2009. 2. 8. 08:39

중성(中城)

초곡성과 조령성 사이에 있다. 남쪽으로부터 오는 적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조곡관(鳥谷關)’ 또는 ‘영남제2관(嶺南第二關)’이라고 한다. 문경새재에 있는 3개의 관문 중 1594년(선조 27) 신충원에 의해 가장 먼저 축성되었다. 조선 후기 숙종 때 관방을 설치할 때 주흘관(草谷城)과 조령관(鳥嶺城)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옛 성을 개축하여 조동문(鳥東門)을 설치하였다. 그 후 1907년 훼손되어 방치되던 것을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때 ‘조곡관’이라고 개칭하였다. 이곳은 1․3관문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 비해 계곡부가 가장 좁다. 그 뿐만 아니라 서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동쪽도 비교적 산세가 험하고, 앞쪽 5m 정도 되는 지점에 성곽과 평행하게 개울물이 흘러서 외적을 방어하기가 쉽다.

임진왜란 당시 신충원이 이곳에 축성을 한 것도 이러한 자연지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곽은 크게 문루와 이와 연결되는 좌우의 평지성, 동쪽(오른쪽) 평지성과 연결된 산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루는 돌로 축조한 홍예문 위에 있다. 문루 아래는 잘 다듬은 입방체형 돌로 바른층쌓기를 하고 그 중앙부에 높이 3.6m, 너비 3.5m, 길이 5.8m의 홍예문을 두었다. 이때 석재들은 높이를 거의 일정하게 다듬어 8단으로 축조하였다. 문루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좌․우에 협문이 1개씩 있다. 문루 앞쪽에는 ‘조곡관(鳥谷關)’, 뒤쪽에는 ‘영남제2관(嶺南第二關)’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큰길을 따라간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출장관리들의 숙소였던 조령원터다.

 

 

 

 

이 건물은 촬영을 위해 지어진건물이다.

 

 

 

조금 더 오르니 교귀정이다.

 

 

 

다시 길을 따라간다. 왼쪽에보이는것이 소원성취탑이란다.

 

이윽고 조곡관(鳥谷關)이다. 

 

문루와 연결되는 평지성도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그러나 문루의 석재가 잘 다듬어져 매끈한데 비해 평지성의 석재는 거칠게 다듬었다. 성벽 상부에는 미석을 두었고 미석 위에 여장을 배치하였다. 평지성 동쪽에 치성이 있다(사진 16). 평지성의 규모는 높이 4.5m, 폭 3.5m, 길이 80m 정도이다. 치성은 문루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산성과 평지성이 만나는 부분에 있다. 규모는 높이 4.5m, 가로 2.3m, 세로 2.4m 정도이다. 산성은 평지성에 연결해 쌓았으며 길이는 35m 정도이다. 이 중 13m 정도는 최근에 보수하였다. 기존의 자연암반을 연결해 쌓았으며 높이는 120㎝를 전후한다.

 

조곡관(鳥谷關)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양옆이 깎아지른 천혜의절벽이라 성곽은 길지 않았다.

 

위에서 보면 마치 태극무늬형태의 성곽이다.

 

도로때문에 성곽이 끊겼으나, 이 옆은 절벽이기때문에 성곽이 필요없다.

 

안쪽모습으로 영남제2관(嶺南第二關)이란 현판이다.

 

안쪽성곽.

 

 

 

치성의 흔적이다.

 

성곽은 여기서 끝난다. 수직절벽이라 더이상 쌓을필요가 없었을것이다.

 

성곽 전체모습.

 

옛모습이 남아있는곳. 아주 짧았다.

 

 

내려와 다시 밖으로 나간다.

 

 

치성 바깥쪽.

 

천혜의 요새인 조곡관.

 

조곡관옆의 깎아지른 절벽.

 

앞쪽의 계곡물.

 

조곡관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조령관이있는 조령성(鳥嶺城)이다.


주흘관과 조곡관은 남쪽의 적을 대비하는것에 비하여, 조령관은 북쪽의 적을 대비하기위해 만든것이다.

조령관이있는 조령성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