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305호
명 칭 : 통영세병관(統營洗兵館)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2002.10.14
소 재 지 :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통영시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먼저 망일루(望日樓)다.
망일루는 통제영의 종루로 광해군 3년(1611) 우치적 통제사가 세웠다. 그 뒤 영조 2년(1748) 장태소 통제사가 직접 편액을 써 걸었으며, 영조45년(1769) 이국현 통제사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었다. 세병관 앞에 자리한 웅장한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이 아래를 통과하여 세병관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어 일명 세병문이라 일컬었다.
한편 이 다락에는 통금의 인정과 이를 해제하는 파루를 치는 커다란 종이 매달려 있었다. 소실되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중건하였다.
망일루를 오르면 지과문(止戈門)이다.
통제영 객사 입구의 삼문(일주문)으로 세병관의 입구의 내삼문으로 인조 24년(1646) 김응해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숙종27년(1701) 류성추 통제사가 중건하였고, 일제시대에 경찰에 의해 강제로 헐렸으나 1967년 다시 복원되어 남아있다. 1930년경의 옛사진에 의하면 커다란 귀면이 3처마 아래에 걸려있는데, 이는 영문의 안녕을 위해 부정과 잡귀의 근접을 막는 주술적인 장식이었다고 한다.
지과문에서 바라본 망일루 모습이다.
지과문을 들어서자 세병관이다.
아래글은 사전에서 인용한 세병관에 관한글이데 너무 어렵다.
4면이 모두 개방되고 내부도 막힌 벽이 없이 기둥만 정연하게 배열되었다.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柱列)에 각각 고주(高柱)를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대량(大樑)을 걸쳤으며 이 고주와 변주(邊柱)는 퇴량(退樑)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건물 측면의 가운데 있는 기둥에서부터 대량에 걸쳐 충량(衝樑)이 배치되었다.
내부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중앙 후면은 한 단 높은 단을 만들었다. 이 단 앞에도 기둥을 한 줄로 세워 그 위의 대량을 중간에서 받쳤다.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였으며 그 구성은 외목(外目)도리를 받친 이익공(二翼工)집의 형식과 비슷하나 쇠서의 형태는 다포(多包)집의 형식과 같다. 기둥 사이의 창방(昌枋) 위에는 화반(花盤)을 받치고 있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柱心包式)이지만, 익공식(翼工式) 수법과 다포식(多包式) 수법이 많이 보인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직접 화반(花盤)을 놓아 주심도리(柱心道里)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架構)는 십일량가(十一樑架)로서 대들보를 양쪽 내고주(內高柱)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중보(中樑)를 걸고,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宗樑)를 걸었다.
종보 위에는 대공(臺工)을 세워 종도리(宗道里)를 받치고 있다.
내고주와 전면 평주(平柱) 사이에는 퇴보(退樑)를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는 양성(兩城)이다. - 이상 백과사전에서..
하여간 내가 보기에 그래서인지..
중앙후면으로 단을세우고, 그곳에 문을 달아 방으로도 쓸수있게하였단 얘기같았다.
통영에서는 주위의 모든 시설을 복원할 계획이라는데, 그렇다면 조선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복원이된다.
삼도수군 통제영본영은 선조37년(1604)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까지 3도(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지휘하던곳이다.
당시 해군본부인 통제영 본영으로서 그 역사적 가치에,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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