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치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 6-20
관 리 청 : 제천시 청풍관광개발사업소(청풍문화재) 043-640-5711
개 요 : 충주호를 굽어보는 호수의 산마루에 자리잡고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의 옛날 화려한 이름만을 전설처럼 남긴 채 물에 잠기게 되자 1983년부터 3년여에 걸
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이 곳에는 한벽루, 금남루, 팔영루,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 4동 등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42점과 생활유물 1,900 여점과
유물전시관에는 3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옛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입구가 청풍 팔영루(八詠樓)다.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제천시)
명 칭 : 청풍팔영루(淸風八詠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도로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6.12.21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제천시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433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으로 고종(재위 1863∼1907)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고 한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지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명 칭 : 청풍도화리고가(淸風桃花里古家)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1.05.01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제천시
관 리 자 : 제천시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433
이어서 수산 지곡리 고가(池谷理 古家)
이 집은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다.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조선말기에 지어진 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우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하기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청풍 황석리 고가(黃石理 告家)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옮겨 복원한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안채는 정면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웃방을 나란히 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아방과 웃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이윽고 한벽루(寒碧樓)로 이어진다.
종 목 : 보물 제528호
명 칭 : 청풍한벽루(淸風寒碧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1.01.08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제천시
한벽루(寒碧樓).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특히 루에 올라갈때 계단역할을 하는 "익랑"은 현존 건축물에 전무한 양식이고,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그옆에 응청각(凝淸閣)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제천시)
명 칭 : 제천청풍응청각(堤川淸風凝淸閣)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1.05.01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제천시
관 리 자 : 제천시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433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그 옆에있는 금병헌(錦屛軒)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제천시)
명 칭 : 청풍금병헌(淸風錦屛軒)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6.12.21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제천시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433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신라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 (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 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정면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앞쪽으로는 금남루(錦南樓)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제천시)
명 칭 : 제천금남루(堤川錦南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6.12.21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제천시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433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도호부절제아문 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청풍석조여래입상이다.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그리고 석물군(石物群)
선사시대 무덤인 지석묘와,고대에서 근대에이르기까지의 남한강변 비석문화를 알아볼수가있다.
조선시대 군수나 부사의 공덕비,선정비등이 있다.
그리고 산 위의 망월산성(望月山城)으로 가본다.
종 목 : 시도기념물 제93호 (제천시)
명 칭 : 청풍망월산성(淸風望月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곽(21,619㎡)
지 정 일 : 1994.06.24
소 재 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 외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제천시
관 리 자 : 제천시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을 돌로 둘러쌓은 작은 성으로, 둘레는 495m이다.'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청풍은 고구려의 사열이현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어서는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으로 고쳐져서 내제군으로 개칭한 제천의 영현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사열이현시대에 이 성이 쌓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
망월산성으로 오른다.
비교적 주위가 깨끗했다.
망월산성.
삼국시대 성답다.
복원된것으로, 그리 크지는 않은성이다.
산성에서 바라본, 문화재단지모습이다.
안내책자를보니 가을이 멋있다.
정상의 팔각정.
산성을 한바퀴돌수있는 산책로다.
소나무숲이 멋있었다.
깃발도 제법 운치가있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흉내낸것같은 건축물이 충주호에 떠 있었다.
연리지와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하며,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 나라 6 대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연리지)가 되도
다>라고 읊었다.
청풍문화단지를 나와 제천쪽으로 가다보니 금월봉을 만난다.
금월봉은 지난 93년 아세아시멘트주식회사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 취장으로 사용되어 오던중 기암괴석군이 발견되었는데 그 모형이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그대로 빼어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 영화와 무술 영화 촬영장소로 각광받고 있고, 최근에는 KBS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촬영장소로 도 이용되고있단다.
현재 개발중이라, 통제를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는 없었다.
제천과 단양엔 볼거리가 참 많다는 느낌으로 차를몰며생각했다.
'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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