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40호
명 칭 : 독산성및세마대지(禿山城및洗馬臺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37,299㎡
지 정 일 : 1964.08.29
소 재 지 : 경기 오산시 지곶동 162-1 외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고복순 외
관 리 자 : 화성시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문화재청
독산성의 동문과 성곽
동쪽성곽과 북쪽성곽이 만나는곳의 치성
동문이다
동문과 성곽
동쪽성곽과 남쪽성곽만나는곳의 치성
아래에서 본 모습이다
두터운 문이다
안쪽의 모습
현재 독산성A 지점이다
동남쪽 치성
북으로 향하는 성곽
복원한 여장이라 별 감흥은 없다
북쪽으로 향한다
뒤돌아본 동문
북쪽과 만나는곳의 치성
치성에서 바라본 동탄 신도시 메타폴리스 건물
치성에서 90도로 꺽이며 북쪽성곽이다
치성위에서...
북쪽성곽을 따라간다
잠시 세마대로...
세마대에서...
세마대(洗馬坮)
임진왜란당시, 특히 물이 부족한 이 곳의 조건을 알고 왜병이 물을 한 지게 올려 보내 조롱하자, 권율장군이 백마를 산상에 세우고 말에 쌀을 끼얹어 말을 물로 씻는 시늉을 해 보이자 왜군은 성내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 퇴각하였다는 세마대의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문화재청
다시 성곽을 따라...
치성위의 멋진 고목
치성을 지나자 보적사(寶積寺)다.
보적사는 삼국시대에 독산성을 축성한 후 성내인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이래 여러차례의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조선 22대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 재건되었던 것으로 전하던 주 건물인 약사전과 요사 3동이 있었으나, 약사전은 약사여래상을 안치하고 정면 3칸(6.5m), 측면 2칸(3.97m)의 굴도리집형에 단청이 섬세한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던 것을 1987년 사적의 경관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면 3칸(9.0m), 측면 2칸(5.7m)의 방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 양식으로 증개축하였다.- 문화재청
보적사앞의 암문
치성이다
치성위에서..
또하나의 치성
방향이 북서쪽으로 바뀐다
성곽과 암문
지나온 성곽
다시 성곽위로...
치성이 나오며 방향은 서쪽으로..
서문이 보인다
동문과 마찬가지로 두터웠다
다시 치성이나오고 성곽방향은 남쪽으로 향한다
남벽과 암문
암문위로 자전거가...
다시 치성이다
치성이 연달아 2개있고, 동문으로 이어진다
치성과 메타폴리스
다시 동문이...
두터운 동문이다
문을 나서며 독산성 답사를 마친다
메타폴리스 건물이 중세와 현대를 비교해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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