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대전 남간정사 (南澗精舍)

메탈 2015. 5. 8. 08:01

종 목 대전광역시 : 유형문화재 제4호 
명 칭 : 남간정사 (南澗精舍)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89.03.18
소 재 지 : 대전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관리자(관리단체) : 송영달
상 세 문 의 : 대전광역시 동구 문화관광과 042-251-4204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깊은 곳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또한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맞은편 언덕에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문화재청

 

우암사적공원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선생이 흥농서당(興農書堂)과 남간정사(南澗精舍)를 세워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며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책을 강구하였던 곳으로 정절사원(靖節事院)과 우암 선생을 추모하기위한 종회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공원정문

 

 

공원입구를 들어서면 좌측에 남간정사가 바로 보인다.

 

기국정과 남간정사.

 

연못과 잘 어울리는 남간정사.

 

 

기국정(杞菊亭)은 원래 소제동(蘇堤洞) 소제제방(蘇堤堤防) 주변에 있던 송시열선생의 별당(別堂)이었는데. 정자 주변에 국화(菊화)와 구기자(枸杞子)가 많이 심어진 것을 본 유생들이 정자의 이름을 기국정(杞菊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초가지붕이었으나,그의 장손 은석(殷錫)이 기와지붕으로 수리하였으며, 도시가 발전하면서 소제호(蘇堤湖)가 매몰되자 1927년에 현재의 위치인 남간정사(南澗精舍) 옆으로 이건(移建)하였다.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기단 위에 방형(方形) 주초석을 놓고 방형(方形) 기둥을 세운 기국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문화재청

 

한국의 미(美)를 엿볼수있다.

대청마루 아래로 물이 흐르게하는 독특한 정자다.

 

 

 

 

 

뒤쪽

 

여름에는 문을열어 접어서 여기에 걸어두면 사방이 탁트인 시원한 정자가된다.

 

 

 

 

 

 

 

 

 

그국정을 뒤로하고 남간정사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