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추억거리 여행

인천 차이나타운

메탈 2010. 12. 8. 03:11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이 된 후로 화교들이 몰려와 생성 되었다. 북성동, 선린동 일대의 5천 평에 청국의 영사와 학교가 설치되고, 중국의 산동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잡화, 소금, 곡물을 팔고 우리나라의 사금 등을 중국으로 보내어 상권을 장악하고 세력을 넓혀 나갔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청관의 상권이 마비되면서 화교들은 대만, 미국, 동남아시아로 떠나고, 일부는 요리집과 잡화상들을 운영하거나, 일부는 부두근로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1948년 한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각종 제도적 제한, 차별대우로 화교 사회는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더불어 1949년 중국정부가 설립되어 외국이동을 금지하면서 더욱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화교 1세들은 고유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았다. 중국의 큰 명절인 설날과 원소절(보름날)사이의 15일 동안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 였으며,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글을 빨간 종이에 써서 붙이고 색등을 걸어 놓았다. 해가 저물면 긴 장대 끝에 폭죽을 수 백개씩 달아 놓고 불꽃놀이를 즐겨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 화교 2·3세들이 1백 70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자금성, 중화루, 진흥각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 가고 있다. - 차이나타운 홈페이지에서

 

차이나타운을 이해하려면 먼저 청일 조계지부터 알아야한다

인천은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 상인 뿐 아니라 비단장사 왕서방으로 알려진 청나라 상인도 활동하게 된다. 그 두나라 상인의 상권이 경계가 이곳이었던 모양이다. 현재는 차이나 타운의 일부가 되어 언덕을 따라 중국 풍의 계단이 들어서고 꼭대기에는 공자의 석상이 있다. 그러나 사진을 기준으로 왼쪽의 중국풍의 건물들과 오른쪽 제물포 조약길을 따라 남아 있는 몇몇 일본이 지어 놓은 근대식 서양건물을 보면 당시의 느낌이 전해지는 것도 같다.

이 계단을 기준으로 우로 우측에는 일본이, 좌측에는 청나라가 자리잡게된다.

 

계단우측에 일본식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일본 18은행과 58은행

 

일본 제일은행

 

일본 우선주식회사

 

 

좌측에 남아있는 청나라건물.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이제 차이나타운을 둘러본다

1호선전철의 종점 인천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보이는패루. 2년전과 모습이다르다

 

                 2년전 모습으로 지금보다 더 화려했다

 

패루를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간다

 

화려한 모습은 그대로다

 

동사무소

 

 

 

차이나타운 상징물이 새로 생겼다

 

 

계단으로 오르면 3패루

 

 

 

 

3패루

 

가로등의 모습

 

짜장면을 먹으러 들어갔다

 

 

 

              이 중국집 근처에 2패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2년전의 2패루 모습

 

대신 옆에 인화문이라는 작은 패루가 새로 마련되어있었다

 

패루 옆에 중국식 정자가 보이는데, 사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야경모습이다. 인천역앞의 1패루

 

 

안쪽의 모습

 

 

동 사무소도 화려했다

 

차이나타운은 밤이 무척 화려하다

 

 

 

 

 

가면의 벽

 

 

 

제 3패루

 

벽화모습

 

 

 

바깥에서 본 패루

 

삼국지 벽화거리

 

 

2년전에 비해서 많이 정리된듯하다

패루를 왜 바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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