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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본관 (韓國銀行本館)

메탈 2008. 5. 21. 15:14

종    목 : 사적  제280호 
명    칭 : 한국은행본관(韓國銀行本館) 
분    류 :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근대산업생산/ 금융업 
수량/면적 : 8,703.5㎡ 
지 정 일 : 1981.09.25 
소 재 지 :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110 
시    대 : 일제강점기
소 유 자 : 한국은행

 

한국은행 본점 건물. 서울특별시 중구(中區) 남대문로3가(南大門路三街)에 있다. 사적 제280호.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연건평 6719㎡이다. 일본인 다쓰노긴고[辰野金吾(진야금오)]가 설계하여 1908년 11월 착공, 1912년 1월 준공하였다. 원래는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 경성지점 건물로 기공되었으나 1901년 일제의 국권피탈 후 조선은행 건물로 사용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법>에 의해 설치된 한국은행 본점으로 사용되다가 6·25로 내부가 불탔다. 1956년 원상태로 복구하여 현재에 이른다.

화강암 석조건물로 지붕은 철골조, 바닥판은 철골콘크리트구조이다. 외형은 H자 좌우대칭형이고 현관 상부에는 화려한 반원 아치의 돔이 있다. 중앙현관에는 화강암 원기둥이 있고 좌우 모서리에는 원형의 돌이 얹혀 있어 프랑스 성관풍(城館風)의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준다.

 

한국은행 건물의 준공 당시 명칭은 조선은행(朝鮮銀行) 본점이다.

일제는 본격적인 대한(大韓) 침략정책에 따라 1905년부터 정부 국고금의 취급, 화폐 정리, 은행권의 발행 등을 담당할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의 한국 총지점인 경성지점(京城支店)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1909년 10월 한국은행을 설립하면서 한국은행은 제일은행 경성지점의 업무를 인계 받아 중앙은행으로서 기능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으로 한국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고, 조선총독부 직속 금융기관으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본 건물은 1907년 11월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착공되어 1909년 7월 11일 정초(定礎)되었고, 1912년 1월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625평 규모였다. 설계자는 다쯔노 깅고(辰野金吾), 시공자는 일본 청수조(淸水組), 감독관은 나까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였다.

다쯔노 깅고는 일본 동경제국대학 공과대학의 전신인 일본 공과대학의 제1회 졸업생(1879년)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인 1880년 영국에 유학했고, 귀국 후인 1886년부터 동경제국대학 건축과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일본 제일은행 본점을 1888~1891년에 걸쳐 설계하였다. 1903년 그는 갈서만사(葛西萬司)와 함께 ‘진야갈서건축사무소(辰野葛西建築事務所)’를 설립했는데, 이 사무소를 통해 일본 제일은행의 경성지점을 설계하였다.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석조로 마감하였다. 외벽 재료인 화강석은 동대문 밖에서 채석했으며, 벽돌은 관립 연와제작소(煉瓦製作所)의 것을 사용했다. 철재는 미국 카네기사 제품과 영국ㆍ일본 제품을 같이 썼다. 의장적으로 중요하게 처리된 지붕은 철골ㆍ철판을 장식적으로 조립했다.

평면은 ‘井(정)’자형 장방형이다. 그 중앙에는 약 160평(529㎡)의 객장(客場)이 있으며, 1,6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한다. 그 지하에는 당시 조선 최대의 대형 금고를 설치하였다.

건물 전면부는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다. 중앙에는 현관부를, 그 좌우의 주 벽체부와 페디먼트(pediment)부를 두고, 원형의 탑을 덧붙였다. 현관은 투스칸 오더(Tuscan order)의 화강석 원주로 받쳐진 캐노피(canopy) 형태이고, 승하차가 가능하다. 중앙 현관의 상부 지붕에는 반원 아치 지붕의 솟은 천창을 두어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주 벽체부에서 1층 벽의 창호는 화강석 수평 띠를 돌출시키고, 2층 창문은 중앙에 홍예석(key stone)을 둔 세그멘탈 아치(segmental arch)로 하고, 창 아래는 난간석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페디먼트부는 앞으로 약간 돌출되었으며, 벽부는 주 벽체부와 같으나 지붕에 페디먼트를 장식하였다. 여기에 원형의 탑을 붙였다. 원탑은 좌우측 끝과 측면 모서리 3곳에 설치됐는데, 그 지붕에는 돔(dome)을 얹어 놓았다. 전체적으로는 유럽 성관풍(城館風)의 르네상스양식이다.

이 건물은 광복 직후 화재로 내부 일부가 소실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폭격 등으로 내부가 거의 파괴되었다. 1956년 5월부터 1958년 10월까지 복구되었다. 1987년 12월 이 건물 후면에 한국은행 신관이 준공되면서, 1989년부터 이 건물은 원형 복원되어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