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작품 위를 걸으면서 거대한 빌딩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오솔길을 떠올릴 수 있다. 비스듬한 경사면을 타고 걸어 올라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만나는 체험은 흥미롭고 뜻깊다. 몸을 움직이면서 작품을 만나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정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상학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이 내어주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한강과 남산의 풍경을 만나고, 이어 무언가 얻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는 바람(願)의 뜻을 새기며 잠시 몸과 마음을 쉬는 데에까지 다다른다. 몸으로 만나는 공공예술 ‘바람의 길’은 자투리땅 교통섬을 꿈과 쉼의 터전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기 좋고 들러보기 편한 쉼터조각이라는 평가 이상의 맥락에 둘러싸여 있다. ‘바람의 길’은 마포대교 길목에 자리한다. 이 점은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각별히 신중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마포대교는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예방 차원에서 이뤄진 공익광고 ‘생명의 다리’는 공공장소에서의 시각적 표현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공동기획하고, 제일기획이 제작한 이 프로젝트는 사람이 난간에 접근하면 불이 켜지면서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문구가 보이게 했다. 제일기획은 ‘쌍방향 스토리텔링 다리’를 기획한 것으로 칭찬받으며 국제적인 광고제 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이전에 비해 자살 시도가 6배나 증가했다. 2014년 한 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5.3명이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이 가운데 마포대교 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 해도 100건이 훌쩍 넘었다. ‘생명의 다리’가 유명세를 타면서 역설적이게도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자살 명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자살률의 불명예가 깊어지고 있는데, 자살예방 캠페인마저 역효과를 내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다. 시지각적 정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너비 11.7m, 길이 25.4m, 높이 6.4m의 대규모인 이 작품은 수직 상승의 권위적인 공공예술과는 차원이 다르게 수평과 곡선의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유형이다. 서울시가 추진한 도시갤러리사업 결과물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자 드라마 촬영지, 야경 명소로도 각광받는다. 관람 대상물인 시각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올라가서 한강을 조망하는 전망대이자, 잠시 머물러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의 기능을 겸한 일석삼조의 빼어난 공공예술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호사에 만족하기에는 운명이 다소 기구하다. 마포대교 입구라는 장소성 탓이다. ‘바람의 길’이 짊어진 무거운 짐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경제정책과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안규철에게 안겨준 감성학적(Aesthetic) 부담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제일기획이 이 작품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포대교의 장소성이 부여하는 아픔을 예술가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답은 시민들에게 있다. 경제정책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주체도 시민이고, 예술작품과 소통하며 그 뜻을 나누는 주체도 시민과 사회이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작품은 구체적인 유용성으로부터 결별함으로써 의미의 자유를 획득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예술 비평은 매우 절박하게 ‘공공예술의 쓸모’를 요청한다. 이 작품은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났으니, 그 쓸모를 짓는 일은 우리 시민, 사회의 몫이다. ‘바람의 길’이 마포대교에 깃든 불행의 씨앗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쓸모 있는 물건이기를! - 인터넷기사
















바람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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