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韓屋)과 누각(樓閣),정자(亭子)

경복궁 집옥재 (集玉齋)

오솔 길 2026. 4. 13. 08:29

경복궁에 있는 중국풍 전각이다. 어진과 도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의 동남쪽, 건청궁의 서쪽에 있다.
건물 3채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 팔우정(八隅亭), 가운데에 집옥재(集玉齋) 본채, 그리고 동쪽에 협길당(協吉堂)이 있으며, 전각끼리 복도로 붙어있다. 집옥재 본채와 달리 팔우정과 협길당은 전통 한국 양식이다.
이름은 ‘옥(玉)과 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다(集)’는 뜻이다. 현판은 중국 북송의 유명한 서예가였던 미불의 글씨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원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다. 창덕궁 함녕전(수정전)은 덕수궁 함녕전과는 이름만 같은 별개의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수정전이었는데 1881년(고종 18년)에 함녕전으로 고쳤다. 1891년(고종 2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고종은 이곳을 어진을 모시고, 책을 보관하며,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서 사용했다. 고종은 개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서양 문물과 관련된 책을 청나라에서 대량으로 구입했다. 고종은 조선 고유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서구의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는 중국, 일본, 서양에서 출판한 다양한 서적과 지도를 들여와 약 4만여 권을 경복궁 집옥재에 수장하고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갔다. 이러한 서적의 수집과 유통경로는 영선사 등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이나 사절단을 통해, 일본을 다녀왔던 조사시찰단에 의해, 박문국을 경유한 서양과의 접촉을 통해 수집되었는데, 국제적 동향과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알려주는 인문학 중심의 교양서를 비롯하여 자연현상을 폭넓게 배울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의 서적까지 다양한 학문 범주에 속하는 서적들이 망라되어 있다. 

고종의 서적 수집은 1880년대 개화 정책 추진의 실무에 기초자료가 되었음은 물론, 대한제국기에 가서도 사회적, 교육적으로 활용됨으로써 지식인들이 근대적 문물을 수용하는데 일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1896년(건양 원년) 아관파천으로 고종과 왕실이 경복궁을 떠나자 집옥재는 빈 건물이 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이 이 일대에 주둔하면서 한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1996년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이 이전한 뒤에 복원, 수리 작업을 거쳐 2006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어 오늘에 이른다. - 안내문

 

비가내려 사진담기가 어려웠다.

임시개방이라 시간이 없다. 얼른 안으로...

집옥재(集玉齋)

팔우정(八隅亭)

협길당(協吉堂)

집우재 임시개방이다.

2층계단인데 막혔다.

팔우정(八隅亭)으로...

복도에서 바라본 집우재 내부

팔우정 가는 전각

2층은 막혀있다.

전각 창문

팔우정(八隅亭) 이다.

집우재와 이어지는 전각

다시 복도로나와 바라본 집옥재내부

협길당은 들어갈수 없다.

팔우정(八隅亭)뒤로 경복궁 신무문이다.

팔우정(八隅亭) 뒤쪽

집옥재 뒤

임시개방한 집옥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