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목애당 (泰安 牧愛堂)
종 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명 칭 : 태안 목애당 (泰安 牧愛堂)
분 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92-08-17
시 대 : 미분류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은 조선조 태안현의 동헌으로 광무 8년(1904)에 오병선 군수가 서문을 썼다.
잘 다듬은 긴 돌로 쌓은 2단의 받침대 위에 네모난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앞면 6칸·옆면 3칸의 건물이다.
오랫동안 태안군청의 민원실로 사용되면서 뒤편으로 건물을 새로 지었고, 내부도 많이 변경되었던 것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 국가유산청
태안읍성 동안문에서 보이는 목애당
좌측에 근민당과 우측에 목애당
근민당으로 향한다.
근민당으로 들어가면 목애당이다.
안에서 바라본 근민당
근민당 앞의 300년 보호수
경이정 (憬夷亭)
경이정은 태안읍성 밖에 지어진 관아 건물로 안흥항에 들어온 중국의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리던 장소이다.
‘경이憬夷’라는 이름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라는 뜻으로 고려 말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던 태안지역의 상황을 반영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왜구의 침략이 점차 줄어들고 경이정이 중국 사신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면서 “항해하는 사신의 평안을 빈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어 전해진다.
매년 정월 보름날에 주민들과 방어사가 함께 평안과 태평을 비는 제사를 지냈으나 1907년에 중단되고,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주민들이 공부할 수 있는 야학당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노인을 위한 쉼터로 이용하다가 1988년에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흔적이 있지만 조선 시대 관아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국가유산청
경이정에서 보이는 태안읍성 동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