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전통공원
수도권 서부 최대 규모의 전통 공원이 인천 월미도에 들어섰다.
인천시는 모두 210여억원을 들여 중구 북성동 1가 월미도 월미산 기슭 49만2288㎡ 규모의 부지에 궁궐정원, 별서정원, 민가정원 등을 갖춘 한국전통공원을 최근 복원, 19일 개장했다.
궁궐정원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애련지를, 별서정원은 옛 선비들이 묵으며 문장을 짓던 별서 정원인 전남 담양의 소쇄론을, 민가정원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인 경북 안동의 양진당과 전통민가의 모습을 각각 재현하고 있다.
인천시는 추가로 250여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전통공원 옆에 근대군사체험지구(7200㎡), 월미성지구(1만8600㎡), 어촌체험지구(3만㎡), 월미행궁지구(5200㎡) 등도 조성키로 했다.
인천시는 또 지난해 7월부터 전통공원 인근에 건립중인 이민사박물관을 내년 3월 완공할 예정이다. 이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4만1300여㎡ 규모로 앞으로 미국 이민 2,3세들이 보관중인 유물과 사진들을 전시하게 된다.
인천시는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월미산 정상 인근 해발 80m 지점에는 투명유리로 만들어진 유리전망대를 건립했다. 이 전망대는 인천 앞바다와 인천공항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소로 수도권 주민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 문화일보
2번 진입광장으로 들어선다.
바닥에 경복궁의 위치만 표시되어 있었다. 건물세팅하기에는 돈이 없나보다.
계속 들어가 본다.
창덕궁의 불노문이다.
애련지와 애련정도 똑같이 복원해 놓았다.
월휴담 이란다.
월미봉.
앞으로 여기에 뭐를 가져나 놓을지...
월미봉으로 올라본다.
월휴담이다.
좌측에 보이는 소쇄원.
서석지다.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입암면(立巖面) 연당동(蓮塘洞)에 있는 조선시대 연못과 정자. 1613년(광해군 5) 정영방(鄭榮邦)이 축조하였다.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敬亭)·주일재(主一齋)·수직사(守直舍)·사우단(四友壇) 등이 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연못 안쪽으로 돌출한 사우단에 의해 U자모양을 이룬다. 못의 북동쪽 귀퉁이에는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이 있고, 남서쪽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이 있다. 연못 북쪽의 주일재는 홑처마맞배집으로서 3칸으로 된 서재이다. 서쪽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방으로 된 경정이 있고, 경정 뒤에는 수직사 2동이 있다. 서석지라는 이름은 연못에 솟아 있는 돌인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된 것으로 각각의 돌에 이름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그런데 어째 만들다만것 같다.
서석지 담장.
건너편에 양진당.
양진당.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豊川面) 하회리(河回里)에 있는 조선 중기 주택. 이 집은 당시 시인이며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형인 겸암(謙庵) 유운룡(柳雲龍)의 종택이다. 축대 위에 세웠고 건물 둘레는 쪽마루와 난간을 둘렀다. 행랑채·사랑채·안채가 연속하여 건축되었으며, 사당만 따로 나와 있다. 행랑채에 우뚝 솟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당마당에 이른다. 솟을대문의 서쪽에는 온돌방과 함실부엌이 있고, 동쪽으로는 마구간과 온돌방을 두어 口자형 안채 전면에 놓인 중문간(中門間) 행랑채와 이어진다.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서쪽에 침방과 사랑방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는 사랑대청이 있다. 사랑방과 대청의 전후면과 측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계자난간을 둘렀다. 안채는 口자형 평면으로 북서쪽에 부엌이 있고, ㄱ자로 꺾여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안방과 안대청이 자리잡고 있다. 안대청은 사랑채와 이어지며, 다시 ㄱ자로 꺾여서 건넌방·마루·방의 순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을 잇는 중문과 연결되어 있다. 부엌의 전면에 광과 온돌방이 붙어 있고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보물 제306호.
저기는 사당같았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월미폭포.
논밭 경작지다.
물을 퍼 올리는 용두레.
직접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약수터 앞은 멧돌을 깔아 놓았다.
소쇄원이다.
담양에 있는 소쇄원과는 많이 달랐다.
저 문 우측에 국담원, 좌측에 부용정이다.
국담원은 18세기 초 일어난 이인좌의 난 당시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학자·의병장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민중들이 경남 함안군 무기리에 조성한 연못이다. 국담은 장방형으로 물에 근접할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주재성은 '국담 주변에서 못의 경관을 감상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데 어찌 큰 벼슬 따위와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뜻을 가진 하환정을 지어 놓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고 한다.
창덕궁 부용지와 부용정.
아주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이것도 똑같고...
창덕궁에 와 있는것 같다.
아미산 굴뚝.
이 삼문을 나서며 공원산책을 마친다.